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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고지혈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원인물질인 지질(트리글리세라이드 및 콜레스테롤 관련 물질)을 동맥경화의 주범으로 돌려 그 자체가 나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실상 지질은 인체기능 수행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필수성분이다. 예를 들면 에너지 원이 되며, 세포막의 성분이 되며, 지방조직에 축적되어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해주기도 한다. 또한 음식으로 섭취하거나 몸 안에서 생성된 콜레스테롤은 성 호르몬, 부신피질 호르몬 등의 원료물질이 된다.
이와 같이 중요한 것이 지질이지만 그 혈중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문제를 초래한다. 혈관 내에 축적되면 병적 현상으로 발전하여 동맥경화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점차 혈관 구멍이 좁아져 심장이나 뇌혈관에 산소 공급이 부족해져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 고지혈증으로 판정났을 때 어떻게 할까? 우선 음식 중 지방성분을 줄일 필요가 있다. 특히 콜레스테롤을 삼가야 한다. 고지혈증은 유전적 원인 등으로도 생기므로 식이요법으로 쉽게 정상치로 낮출 수 없는 경우에는 약을 복용할 필요가 있다. 고지혈증 치료제이다.
- 1950년대부터 발견된 치료약
약의 발견에서는 처음 실마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무작위적으로 천연물과 합성 화합물을 스크리닝하여 구조적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고, 인체 생리기능 연구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과정으로 나왔건 실마리 구조가 그대로 약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임상적 효능성과 부작용 및 독성이 없는 물질을 발견하기 위해서 구조를 최적화할 필요가 있다. 구조 최적화란 가능성 있는 여러 구조를 모두 합성하여 시험해본 후에 그 중 가장 적합한 물질을 선택하는 것이다.
고지혈증 치료제 연구는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 미국 신시내티 윌리엄 머렐의 로버트 앨런과 프랭크 팔로폴리는 1955년 에스트로겐이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춘다는 사실을 유심히 생각했다. 그들은 성 호르몬 효과를 나타내지 않으면서 콜레스테롤만을 낮추는 약을 발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결과 에스트로겐성 클로로트리아니센chlorotrianisene을 실마리로 하여 그 구조를 다양하게 변형시켜서 1959년 트리파라놀triparanol을 합성, 약으로 개발했다.
그러나 트리파라놀의 운명은 밝지 못해서 시장에 나온 후인 1962년 백내장 부작용이 발견되어 철회되었다. 약은 처음에 동물실험에서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임상실험을 한다. 임상실험에서 약의 효능성과 안전성이 확립되면 허가를 받아 발매하나 아직 안전성에 관한한 안심할 것은 못 된다. 사람들이 널리 사용한 후에야 부작용 및 독성이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트리파라놀은 발매된 후에 부작용이 발견되었고 이것이 치명적이라고 판단되어 발매가 철회된 것이다.
- 식물성분을 실마리로 발견된 클로피브레이트
트리파라놀 연구와 거의 같은 때 영국 ICI에서도 고지혈증 치료제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은 어떤 식물성분이 콜레스테롤과 트리글리세라이드의 농도를 모두 낮춘다는 사실을 실마리로 택했다. 합성학자 존스, 생화학자 트로프, 웨어링 등이 4년간 연구 끝에 1961년 클로피브레이트clofibrate를 발견했다. 이 약은 현재도 의사들이 많이 처방하고 있다.
약은 제제 속 성분이 약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효소에 의해서 구조가 변한 것이 약 작용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살리실산으로 해서 작용하는 아스피린도 그 한 가지 예이다. 클로피브레이트도 아스피린과 유사하게 클로피브르산으로 변해서 작용을 나타낸다. 이런 사실을 안 약 과학자들은 클로피브레이트보다 좀더 흡수가 잘 되고 몸 안에서는 전부 클로피브르산으로 변하는 물질을 디자인하여 심피브레이트simfibrate(1966), 에토피브레이트etofibrate(1971) 등 여러 개의 약을 발견했다.
이런 원리 외에도 클로피브레이트의 구조를 좀더 최적화한 겜피브로질gemfibrozil(1969), 베클로브레이트beclobrate(1975) 등의 약도 발견되었다. 미국 파크데이비스의 크레거가 합성한 겜피브로질은 아래 설명한 로바스타틴 및 유사약보다는 못하지만 가장 많이 처방되는 약이다.
- 담즙산을 배설시키는 약
자세한 발견 이야기는 찾을 수 없으나, 담즙산 결합수지도 고콜레스테롤 혈증에 사용된다. 콜레스테롤은 간에서 일부 담즙산으로 변한 것이 담즙에 포함되어 담관을 통해 십이지장으로 이송된다. 이렇게 장으로 이송된 담즙산 중 일부는 대변으로 배설되지만 상당 부분은 다시 흡수되어 재생된다. 만일 십이지장으로 이송된 담즙산을 다시 흡수되지 않게 막고 전부 배설시킨다면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는 떨어질 것이다. 이에 적합한 물질은 그 자체는 먹어 흡수되어서는 안 되며 담즙산과만 결합해야 한다. 영국 브리스톨마이어즈의 콜레스트라민cholestyramine이나 미국 업존의 콜레스티폴cholestipol은 이와 같은 원리로 작용하는 이온 교환수지이다.
- 로바스타틴, 심바스타틴, 프라바스타틴의 발견
고지혈증 치료제, 정확히 말해서 고콜레스테롤 혈증 치료제로 현재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약이 미국 머크의 로바스타틴lovastatin과 심바스타틴simvastatin 그리고 일본 산쿄에서 발견한 프라바스타틴pravastatin이다. 심바스타틴은 로바스타틴의 반합성 동족체이며 프라바스타틴은 미생물산물인 콤팍틴compactin의 대사산물이다. 1987년 로바스타틴을 시작으로 1년 간격으로 발매된 심바스타틴, 프라바스타틴은 1995년 매상액에서 로바스타틴 12억 5,000만 달러, 심바스타틴 20억 달러, 프라바스타틴 11억 달러를 기록했다.
로바스타틴 발견은 미생물 산물로부터 약을 발견해온 머크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머크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페니실린 개발연구로부터 미생물 연구에 기초를 닦았다. 그 후 현재 각광을 받고 있는 프리막신 등 여러 유명 항생물질을 개발했다. 머크는 미생물 배양액에서 항생물질뿐 아니라 구충제, 고콜레스테롤 혈증 치료제 등을 발견한 점에서 독특한 전략을 가진 기업이다.
제약연구소의 탐색연구실은 실마리 물질을 찾아내는 부서이다. 1970년대 머크의 탐색연구실 책임자 아서 패쳇은 4,000개의 미생물 배양액을 검토했다. 한 균주 Aspergillus terreus에서 나온 물질이 조류질병을 치료할 새로운 술파제로 가능성이 있었으나 최종 개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배양 추출물은 일반약효 스크리닝에서 콜레스테롤 생합성 억제작용이 나타났다. 패쳇은 이것을 놓치지 않고 생화학 연구실로 보내 자세한 검토를 부탁했다.
이 추출물은 1978년 앨프리드 앨버츠가 책임자로 있는 생화학 실험실의 여성연구원 줄리 첸에게 도착했다. 첸은 콜레스테롤 생합성 억제제를 실험할 방법을 확립한 바 있으므로, 자세한 실험결과 정말로 추출액 속에 콜레스테롤 합성을 억제할 물질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 순서는 약효성분을 순수하게 분리하는 일이었다. 앨버츠와 연구원들이 이 일을 해내는 데에는 1년이 걸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알버스-쇤버그의 분석능력에 힘입어 이 성분의 구조는 쉽게 결정되었다.
이제까지 콜레스테롤 생합성을 억제할 가능성은 시험관 내 실험으로 측정된 것이나 곧 동물실험에서도 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머크는 로바스타틴을 1980년 특허출원했고 동물을 사용한 안전성 실험에도 통과하여 곧 임상실험 단계로 이어졌다. 이 모든 연구의 책임자는 앨버츠였다. 그는 머크 연구자원의 25%를 이 연구에 투입하여 단시간 내에 임상실험에 들어가기 위해서 전(前)단계의 필요한 연구를 완결했던 것이다.
이때 앨버츠와 연구원 그리고 이 연구에 깊은 관심을 보인 머크 회장 로이 바겔로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일본 과학자들이 유사한 화합물을 독성 때문에 폐기했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76년 도쿄 대학 농업기술대학의 아키라 엔도가 페니실린 곰팡이 배양액에서 유사한 콜레스테롤 생합성 억제성분을 분리하여 콤팍틴이라고 이름 붙였으므로 이 소식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바겔로스의 지시에 의해서 즉시 임상실험이 중지되었다.
그러나 이 소문은 다행히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임상실험을 계속하여 연구원들은 신약허가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했다. 드디어 1987년 앨버츠와 함께 연구하던 12명의 박사급 연구원들은 황홀한 순간을 경험했다. 미국 식품의약국의 신약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이때쯤 머크는 이미 로바스타틴의 일부 구조를 바꾼 심바스타틴의 신약허가를 제출중이었다. 로바스타틴보다 좀더 활성이 강한 이물질의 신약허가는 다음해에 받았다. 일본 산쿄 제약은 브리스톨마이어즈-스퀴브와 제휴하여 콤팍틴의 대사산물을 미생물 방법으로 합성하여 약으로 개발, 1989년 미국 발매허가를 받았다. 이것이 프라바스타틴이다.
- 로바스타틴 발견의 주역
1992년 미국 제약협회는 로바스타틴의 발견자에게 발견자상을 수여했다. 이때 상을 받은 세 과학자는 패쳇, 앨버츠, 알버스-쇤버그였다. 패쳇과 앨버츠의 공로는 자명한 것이나 알버스-쇤버그의 공로는 무엇일까? 아무리 최첨단 분석장비를 갖춘 연구실이라고 하나 그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복잡한 로바스타틴의 구조 해석은 가능하지 않았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실제로 한 개의 약이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수백 명 이상의 과학자 및 기술자의 협동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현대약 발견은 화학, 생물학, 공학, 약학, 의학의 모든 분야가 망라된 오케스트라로 비유된다. 이에 걸리는 기간도 10여 년, 소요되는 경비도 수천억 원의 엄청난 것이다. 이 때문에 중요단계에서의 결단은 연구소 사장뿐만 아니라 회사의 최고 경영자가 내린다. 이들은 약의 과학성에도 정통한 사람들이다.
로바스타틴의 개발에는 머크의 연구소 사장인 바겔로스와 그와 수십 년간 인연을 가졌던 앨버츠의 공헌이 가장 큰 것으로 평가된다. 어째서인가? 바로 바겔로스는 오랫동안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콜레스테롤 대사 연구경험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한 로바스타틴 개발의 총책임을 맡았던 앨버츠는 바겔로스의 오랜 조수였다.
바겔로스는 어린 시절 빈한한 가정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까지 장난꾸러기였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집 음식점에서 웨이터로 일하며 학교를 다니는, 대학진학을 생각할 수 없는 그런 학생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음식점에 자주 오는 근처 제약회사의 사람들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근사하고 지적이고 재미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대단히 즐겁게 생각했다. 문득 바겔로스는 자신도 이들과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결심이 굳어지자 열심히 공부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후 펜실베이니아 대학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컬럼비아 의대에 진학하여 1956년 졸업했다.
인턴 과정을 마친 후 국립보건원에 의사로 들어간 바겔로서는 환자를 돌보면서 연구를 시작했다. 1959년 이때 앨버츠가 국립보건원에 직장을 구하려고 했는데 그는 바겔로스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앨버츠는 메릴랜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논문만을 남긴 채 직장을 구한 것이다. 그는 후에도 논문을 제출하지 않아 박사는 되지 못했다.
바겔로스와 앨버츠는 국립보건원에서 인체의 콜레스테롤 생합성 경로를 연구했다. 앨버츠는 바겔로스가 1966년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으로 옮길 때에도 따라갔고 1975년 머크로도 함께 옮겼다. 바겔로스는 연구소의 총책임자로 많은 혁신적인 일을 했으나 그가 오랫동안 연구해왔던 지질대사 분약에서 새로운 약인 로바스타틴을 찾아내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한 것이다.
머크는 외부 연구자들과 협력하여 이 약의 작용 메커니즘도 연구했다. 이것은 약 효과의 해석과 부작용의 가능성 검토에도 중요한 것이다. 또한 약의 적용범위를 설정하는 데도 중요하다. 특히 중요한 업적은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대학의 마이클 브라운과 조지프 골드스타인에게서 나왔다. 이들은 저밀도지단백(LDL)이라고 부르는 콜레스테롤 함유 분자가 핏속에서 세포표면의 일정부위(수용체)를 통해 섭취되어 제거되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또한 로바스타틴을 투여시 간에서 콜레스테롤의 생합성이 억제되어 그 결과 더 많은 LDL 섭취를 위한 수용체가 생긴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다. 브라운과 골드스타인은 이 연구업적으로 1985년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출처 : 강건일(2014). '강건일의 현대약 발견사 1800-1980', 참과학
* 저자 허가 하에 일부를 게시합니다.